“여행 속의 도전, 그리고 성취의 즐거움”
- 이승연
- 2014년 3월 23일
- 3분 분량
이승연

중국에서의 즐거웠던 첫날이 지나고 신나는 일이 가득할 것만 같은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지각까지 하면서 아침으로 뷔페에서 세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설렘으로 가득 찬 우리를 태우고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만리장성은 평소에 내가 꼭 한번 가봤으면 하는 곳이었다. 세계문화유산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웅장한 그 모습을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했다. 차창 밖을 보니 주위에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저 멀리 초록 산이 보이기 마련인데 베이징에서는 도통 산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답답했던 터라 차창 밖 멀리 보이는 산이 참 반가웠다. 그리고 그 산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만리장성이 눈에 들어왔다. 험준한 돌산 위에 견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성의 모습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성벽을 눈으로 따라가도 따라가도 끝이 없었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장성을 눈으로 열심히 좇아가고 있는데 버스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서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웅장한 모습은 더 멋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장성을 잇는 엄청난 경사의 계단들을 발견하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안 그래도 신발이 불편해서 다리가 퉁퉁 부었는데 저 계단들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니…..’ 황사 때문에 뿌연 하늘이 더 뿌옇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들 올라가는데 나 혼자 올라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단 발걸음을 떼어 계단을 하나 둘 올라갔다. 처음에는 옆에 같이 걸어가던 상아랑 장난도 치고 하하호호 수다도 떨면서 여유롭게 올라갔다. 그리고 첫 번째 망루에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걸어왔던 엄청난 계단들과 아직 올라오지 않은 친구들이 다들 조그맣게 보였다. 올라오기 전까지는 ‘저기 보이는 첫 번째 망루까지 일단 올라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올라왔는데 눈앞에 또 다른 새로운 망루가 보이자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아와 진영이랑 잠깐 숨을 돌린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망루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계단의 경사도 가팔라지고 체력도 점점 지쳐갔다. 거기에다 햇빛도 더 따갑게 내리쬈다. 점점 걸어 올라가는 속도가 늦어지는 게 느껴졌다. 가파른 코너를 돌아야 하는 길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 아 이제 못하겠다. 내려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멈춰 서려는 순간, 같이 올라가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께서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며 손을 잡아 주셨다. 그 때,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 것 같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다 같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다들 지쳐서 서로 말 한마디 안하고 제각각 앞에 있는 계단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혼자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옆에 교장 선생님도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그냥 더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참 신기했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같이 올라가던 상아와 진영이도 보였다. 상아는 체력이 정말 좋은지 씩씩하게 잘 올라가는 듯 했고 진영이는 나만큼이나 힘들어 보였다. 진영이도 좀 전의 나처럼 눈앞에 있는 계단들만 보고 걸어 올라오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교장 선생님은 진영이의 손도 잡아주셨고 우리는 그렇게 해서 옆에 같이 걷는 친구,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힘을 얻어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서서 쉴 때, ‘더 올라가면 내가 다시 내려올 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면 옆에서 상아가 자기는 더 올라간다며 같이 올라가자고 무작정 손을 내밀었다. 그 당시에는 올라가지 말자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상아가 내민 그 손 덕분에 힘들어도 계속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걷고 또 걷다 보니 나 또한 오기가 생겨서 나중에는 꼭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각오로 윗옷을 벗어 허리에 질끈 묶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꿋꿋이 올라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정상 바로 밑에 있는 망루까지 올라왔다. 거기까지 올라온 여학생은 상아, 진영이 그리고 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뒤에 (이)진영이과 은영이도 우리가 있던 망루까지 올라왔고 그 뿌듯함을 함께 느꼈다. 얼굴은 토마토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오르고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만큼 힘들었지만 버스를 타고 올 때 보았던 그 웅장하고 멋있는 만리장성의 한 장면에 내가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정말 좋았다.
이 사진은 망루 위에서 빨개진 얼굴을 미처 다 식히지 못하고 찍은 것이다.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사진으로 추억을 만드는 일은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만리장성의 그 멋있는 모습과 엄청난 계단들, 그리고 곁에 누군가가 함께한다는 것이 주는 긍정의 힘까지 모두 생각날 테니 말이다. 이번 베이징 여행, 특히 만리장성 여행은 나에게 여행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평소에 열심히 해보겠다는 목표의식이 부족한 나에게도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오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으며 내 옆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 선생님,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삶의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뜻 깊은 인생수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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